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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429
한자 越松亭
영어의미역 Wolsongjeong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2[월송정로 517]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백영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자
건립시기/일시 1326년 창건연표보기|1980년 복원연표보기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2[월송정로 517]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고려시대 정자.

[위치]

월송정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송림에 자리 잡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강릉분기점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에 이르면 국도 7호선과 만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국도 7호선을 타고 달려 동해시를 벗어나 삼척시를 지나면 울진으로 접어든다. 국도 7호선을 타고 울진을 벗어나 영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도로 건너편에 월송정 입구가 있다.

[변천]

1326년(충숙왕 13)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다. 충선왕안축(安軸)의 기문에 “정자를 여기에 지으면 그 운치가 한송(寒松)·월송(越松)의 두 정자와 서로 갑을이 될 것이다”라고 한 기록이 있으며, 1349년(충정왕 1) 이곡(李穀)이 쓴 「동유기(東遊記)」에 의하면 평해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일만 주의 소나무 속의 정자를 월송이라 하고, 이 월송에 사선(四仙)이 놀고 지나갔다 하여 그 이름이 연유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옛 군지의 기록에 신라 때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南石)·안상(安祥) 등 네 화랑이 달밤에 솔밭에서 놀았다고 하여 월송정이라 하였다 하며, 월국(越國)에서 소나무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하여 월송(越松)이라고 하였다 한다.

월송정은 조선 중기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낡아서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 황만영(黃萬英)·전자문(全子文) 등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김정문(金正門)·박선규(朴善奎)·김익만(金益萬)을 비롯한 80여 명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이 썼다. 월송정은 2008년 마루 부분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형태]

월송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 약 86㎡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현황]

1985년 안내 간판을 새로 만들고 진입로를 확장하고 포장하였으며, 약 1,157㎡의 주차장을 마련하였다. 1987년 도비 3000만 원으로 주변을 말끔히 단장하였고, 1989년 산책로 1,200m를 조성하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주변에는 송림을 자랑하는 구산해수욕장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치가 아름다워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과 더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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