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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800507
한자 土器
영어의미역 Potte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울진군
시대 선사/선사,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심현용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개설]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토기는 흙을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그릇을 말하며, 과거 수렵 및 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진다. 아직까지 울진 지역에서는 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양한 시대의 토기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토기가 조사되었다.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기원전 1,000년 사이의 시기로,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이다. 울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확인된 유적은 죽변면 죽변리 유적으로 지표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 토기는 신석기시대 초기의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로, 현재까지 울진 지역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토기이다. 덧무늬토기는 토기 표면에 진흙띠를 붙이거나 겉면을 맞집어 돋게 하여 장식한 것을 말하는데, 죽변리에서는 모두 작은 편으로 채집되어 기형(器型)은 알 수 없으며, 색조는 대부분 적갈색을 띈다.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청동기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000년~기원전 300년까지를 말하며, 대표하는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이다. 민무늬토기는 굵은 모래나 석립가루를 섞은 진흙으로 빚어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구운 납작바닥토기로 대개 황갈색 또는 적갈색을 띠며, 그릇의 표면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민무늬토기는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들이 전해지는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초기까지도 새로 전해진 토기들과 함께 사용된다.

울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 토기가 확인된 유적은 기성면 봉산리 유적과 정명리 유적으로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토기는 대부분 파손되어 완형은 거의 없으며, 구연부편·동체부편·저부편 등이 다량 출토되었고, 박리가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색깔은 대부분 흑갈색·황색·황갈색·적갈색·자색·적색 등을 띠며, 태토는 가는 모래 또는 굵은 모래, 석립이 포함된 점토를 사용하였다.

내면과 외면에 손누름흔 또는 물손질흔이 있는 것도 확인된다. 특히 구연부에 구멍을 뚫어 장식한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대각 중심에 구멍이 있는 두형토기(豆形土器), 구연부 단면이 원형 또는 타원형의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등의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구멍무늬토기는 입술 측면에 한 줄 또는 두 줄의 구멍을 뚫은 것으로 동북 지역에서부터 출발하여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된 토기이다. 덧띠토기는 구연부(아가리)에 점토로 된 띠를 덧대에 만든 토기로, 단면 형태에 따라 크게 원형과 삼각형으로 구분된다. 원형에서 삼각형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기원 전 2세기 중엽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삼국시대]

원삼국시대는 토기 제작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이다. 노천이 아닌 지붕이 있는 등요의 출현, 물레의 사용, 분업적인 경영 등은 높은 온도에서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토기의 특징은 중부 지방·영남 지방·호남 지방의 양상이 다르며, 크게 타날문토기와 와질토기(瓦質土器)로 대표된다.

영남 지역은 와질토기가 대표적이며, 와질토기는 고운 태토에 회색조를 띠며, 구워진 정도가 기와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에 중국 한대(漢代) 토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민무늬토기와는 달리 밀폐된 가마에서 구원진 것으로 생각된다. 울진 지역에서 원삼국시대 토기가 확인된 유적은 죽변면 봉평리근남면 노음리 유적으로, 모두 지표조사에 의해 와질토기편·경질타날문 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삼국시대는 기원 후 300년~기원 후 668년까지를 말한다. 삼국시대의 토기는 섭씨 1,000℃ 이상에서 구웠기 때문에 쇠붙이 같이 단단하여 도질토기라고 부른다. 이 토기는 와질토기가 사라지고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전통을 가진 갈색(褐色) 계의 연질(軟質) 토기가 계속 사용되는 한편, 도질토기라고 하는 아주 단단한 회청(灰靑)색의 경질(硬質) 토기가 나타난다.

제작 기술은 회전판을 이용을 이용하다 점차로 물레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표면이 반들거리는 것은 높은 열에 태토속의 규산이 유리질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종은 굽다리접시[高杯], 장경호가 대표적이다. 단경호·대부장경호·완·파수부배·부가구연장경호·기대 등 다양하며, 표면에 삼각형·밀집평행선·파상문·반원문 등의 문양을 장식하였다.

울진 지역에서 삼국시대 토기가 확인된 유적은 매화면 덕신리·매화리 유적, 죽변면 봉평리 유적으로 모두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되었다. 모두 신라 양식 토기로 시대는 대체로 5~6세기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덕신리 유적에서는 창녕 양식과 의성 양식 토기가 몇 점 출토되었다.

[참고문헌]